말복, 왜 우리는 아직도 삼계탕 앞에 줄을 설까
한여름 뙤약볕도 한풀 꺾였을 법한데, 유독 이맘때만 되면 삼계탕집 앞은 다시 장사진을 이룹니다. 달력을 보면 이미 입추가 지났는데도 말입니다. 바로 '말복(末伏)'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초복도 아니고 중복도 아닌, 왜 하필 삼복의 마지막 절기를 우리 조상들은 그토록 특별하게 여겼을까요. 그 답을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보양식 문화를 넘어 계절의 경계를 대하던 옛사람들의 마음가짐과 만나게 됩니다.
삼복 중에서도 '말복'이 다른 이유
삼복은 초복·중복·말복을 아우르는 말로, 음양오행 사상에서 유래한 '경일(庚日)'을 기준으로 날짜가 정해집니다. 오행에서 '경(庚)'은 서늘한 가을 기운인 금(金)에 속하는데, 한여름 뜨거운 화(火)의 기운이 이 금 기운을 억누른다는 뜻에서 '엎드릴 복(伏)' 자를 붙였다고 전해집니다. 하지·입추 사이의 세 번째 경일이 초복, 네 번째가 중복이며, 말복은 입추가 지난 뒤 처음 맞는 경일입니다. 그래서 말복은 다른 두 절기와 달리 '가을의 문턱에서 만나는 여름의 마지막 고비'라는 독특한 위치를 갖습니다. 경일은 십간(十干)이 열흘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방식으로 계산되다 보니, 해마다 삼복의 날짜가 조금씩 달라지고 초복과 말복 사이의 간격도 유동적입니다. 이런 이유로 어떤 해에는 중복과 말복 사이가 유독 길게 벌어지는 '월복(越伏)'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 역시 말복을 둘러싼 흥미로운 절기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진나라에서 건너온 풍속
말복이라는 개념은 중국 진(秦)나라 세시풍속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더위를 다스리기 위해 개고기를 삶아 성문 앞에서 나눠 먹었다는 기록이 전하는데, 이 복날 문화가 이후 한반도로 건너와 우리 기후와 농경 생활에 맞게 자리 잡았다는 것입니다. 삼국시대 이후 문헌 곳곳에 복날 관련 기록이 남아 있어, 오랜 세월 우리 조상들의 생활 리듬 속에 깊이 스며든 절기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만 대륙에서 건너온 절기가 그대로 정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농경 사회였던 한반도에서는 무더위 속 논밭 일로 지친 몸을 추스르는 실질적인 필요와 맞물리면서, 복날은 점차 '몸보신'이라는 우리 고유의 색깔을 입게 되었습니다.
대표 전통 풍속들
복달임, 몸을 지키는 지혜
말복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삼계탕, 개장국, 육개장 같은 '복달임' 보양식입니다. 이열치열이라 하여 뜨거운 음식으로 지친 몸을 다스렸다는 것인데, 무더위에 땀으로 빠져나간 기력을 단백질과 따뜻한 국물로 보충하려던 조상들의 생활의 지혜로 볼 수 있습니다. 지역과 집안에 따라 삼계탕 대신 개장국이나 육개장을 즐기기도 했는데, 어떤 음식을 택하든 '뜨거운 국물 한 그릇으로 여름을 넘긴다'는 마음만큼은 공통적이었습니다.
탁족, 계곡에 발을 담그다
선비들 사이에서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는 '탁족(濯足)'이 즐겨 행해졌습니다. 단순한 피서를 넘어 자연과 하나 되어 마음을 다스리는 풍류로 여겨졌으며, 시를 짓고 벗과 담소를 나누는 자리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복선, 여름을 나누는 부채 선물
웃어른께 부채를 선물하는 '복선(伏扇)' 풍습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여름 더위를 함께 나누며 안부를 전하던 예법으로, 작은 부채 하나에 정성과 존경을 담았던 셈입니다. 관아에서 여름철 백성들에게 부채를 나눠 주었다는 기록도 전하는데, 웃어른뿐 아니라 이웃과 더위를 함께 견디자는 공동체적 의미도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지역마다 다른 속담과 금기
지역에 따라 말복에는 물놀이를 삼가거나 특정 일을 미루는 풍속도 전해지는데, 이는 계절이 바뀌는 경계에 몸가짐을 조심하려던 옛사람들의 마음가짐이 담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복을 나는 방식
시대가 변해 복달임의 풍경도 달라졌습니다. 삼계탕집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는 줄 대신, 배달 앱으로 삼계탕 한 그릇을 주문해 집에서 여름을 나는 것이 요즘의 말복 풍경입니다. 탁족 대신 계곡 캠핑을, 복선 대신 여름 선물 세트를 주고받는 모습도 낯설지 않습니다. 형식은 바뀌었지만 '몸을 챙기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는 본질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올여름 말복에는 삼계탕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왜 우리 조상들이 삼복 중에서도 이 마지막 절기를 그토록 살뜰히 챙겼는지 한 번쯤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여러분의 집에서는 말복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